동명항 part 2 / 강원도

2010/12/20 12:59 Tags » , ,
동명항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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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나는 건, T-pain과 그의 친구들이 외쳐 되던 "I am on a boat!". 그래, 우리는 지금 보트 위에 있다. 하지만, 날렵한 돛도 없고 아늑한 선실도 없다. 그렇다고, 옅은 갈색의 원목으로 만든 선텐 의자가 놓여진 화려한 선상 위도 아니다. 아무렴 어떠한가. 배를 탄다는 것, 그 자체가 대구 촌놈에겐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문이 되는걸.

챙이 달린 모자 밑으로 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선장님이 우리를 맞이한다. 큰 키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고무장화를 신은 모습이 누가 봐도 뱃사람이다. 인사도 나눌 겨를 없이 주황색 구명조끼를 건네신다. 군데군데 낡고 해어진 두툼한 구명조끼를 입고나니 제법 배를 탄다는 게 실감이 난다.

'자, 나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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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님을 따라 부두로 나간다. 좁은 부둣가에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배들이 엉성하게 옆구리를 맞대고 있다. 유치원 선생님을 따르는 어린이처럼 종종 걸음으로 걷다가 선장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배 위에 오른다. 뱃머리에 모여 출발하기를 기다리는 우리는 한껏 들떠 있다. 우리들의 항해에 관한 간절한 눈빛을 선장님은 읽고선 거친 엔진을 돌린다. 하얀 물거품이 일어나더니 배는 바다로 미끄러져 나간다.

"오~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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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나아갔을까, 거친 숨소리를 내며 돌던 엔진은 멈춰지고 세제 거품처럼 피어오르던 하얀 물거품도 가라앉기 시작한다. 배낚시라고 해서 우아하게 낚싯대를 휘어 던져가며 팔뚝만한 참돔을 잡아 올리는 상상은 보기 좋게 어긋난다. 선장님은 우리에게 저울과 같이 양쪽에 추가 달린 물건을 건네주신다. 그리곤 추에 달린 낚싯바늘에 지렁이를 끼우신다. 지렁이의 입을 관통해서 들어간 낚싯바늘은 은빛 날카로운 날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게 숨는다.

'이 지렁이가 물어올 물고기가 과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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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심쩍은 마음도 꽤 무게 나가는 추와 지렁이를 문 바늘과 함께 달아서 바다 밑으로 내려 보낸다. 연을 하늘에 날려 보내듯 말려진 줄을 빙빙 돌려 풀면 납추의 무게로 자연스럽게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쿵, 하고 묵직한 느낌이 드는게 바다 바닥의 모래에 무사히 안착을 했나 보다. 잔잔한 파도는 긴장되어 탱탱하게 선 낚싯줄을 툭툭 건드린다.

'과연, 내게 잡히는 식탐 많고 어리석은 녀석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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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치는건지 물고기가 바늘을 물고 흔드는건지, 미세한 요동에 그냥 줄을 당겨 끌어올린다. 점점 선명해지는 추와 그 끝에 달려 흐늘적거리는 물고기! 아, 내가 잡은 것이다. 아니 그냥 와서 물렸던 것이다. 이후로 추를 내리는 족족 두 개 혹은 하나씩 물려 올라오곤 했다. 30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친구 두 명이 뱃멀미로 선상에 새우등을 하고선 눕기 시작한다. 눈치 빠르신 선장님은 우리가 곧 뱃머리를 돌릴 것을 예상하셨는지 물고기를 담은 큰 통에서 오렌지빛의 멍게를 꺼내시더니 쓰윽쓰윽 칼질을 하신다.

소주 한잔을 들이키고선 미리 준비한 초장에 멍게 찍어 입 안으로 밀어 넣는다.

"캬아~ 죽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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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서는 처음 떠나는 배낚시였다. 낚싯대 없이도 낚시를 할 수 있다는 것에 흥미로웠으며, 그냥 지렁이를 끼워 내리기만 해도 바늘을 덥석 무는 식탐 많은 가재미가 그렇게 많은지도 이제야 알았다. 사실, 이 배낚시는 낚시꾼의 실력보다는 선장의 실력에 따라서, 그날의 선장이 물고기의 흐름을 읽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침에 이미 바다에 나가서 낚시를 하셨다며, 그때 잡은 물고기를 우리가 잡은 물고기에 몰래 얹혀 주시는 선장님의 따뜻한 마음도 첫 배낚시의 멋진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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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0 12:59 2010/12/20 12:59

동명항 part 1 / 강원도

2010/12/16 01:39 Tags » , , ,
동명항 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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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항은 밝은 해가 떠오르는 일출의 고장이라는 뜻으로 속초에서 일출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란다. 일출을 볼 수 있는 거대한 등대도 있고, 해맞이 하기에 가장 알맞은 높이의 수평선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지만, 사실 속초의 이 작은 항구는 분식집 식단처럼 조촐하고 단조롭다. 그 크기에 딱 맞는 잔잔한 파도가 부둣가에 허리를 맞대고 있는 작고 낡은 어선을 춤추게 한다. 마치 거친 파도에 부딪히고 맞서 살아가야 하는 삶을 위로하듯이. 부산의 거대한 항구처럼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동명항은 아기자기한 손으로 등을 쓰다듬으며 아픈 배를 쓰다듬으며 풀어주는 할머니의 약손같이 따뜻하고 다정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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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항구는 그리운 나의 할머니와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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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앞바다로 뻗은 방파제 끝에는 외로운 등대가 서 있다. 그 등대는 오늘 새벽에 출항한 어선을 기다리느라 허리를 꼳꼳이 세우고 먼바다를 바라본다. 그 등대의 애타는 마음을 바다가 읽었는지 잔잔한 물결로 등대 마음을 위로한다.


나의 할머니는 해가 떨어지면 언제나 집앞 골목 끝까지 나와서 나를 기다리곤 했었다. 가방을 끌며 터벅터벅 걸어가다 그 어둑한 골목길에서 등이 굽은 할머니를 만나는 나의 입에선 항상 퉁명한 말뿐이었다.

"왜, 나왔어? 춥잖아."

그리고 돌아오는 말은 대답 대신에 언제나 같은 질문이었다.

"아이고, 왜 이제 오노? 밥은?"

행여, 가로등 꺼진 거리에서 겁을 먹고 다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종종걸음으로 멀리 나왔을 할머니는 몇 분일지, 몇 십분일지, 몇 시간일지,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렸었다. 앞서 걷는 내 발걸음의 속도를 뒤따라 걷는 할머니는 따라오지 못하고 거칠어진 숨소리와 함께 점점 멀어진다. 멈춰 서서 뒤돌아보는 나에게 할머니는 어서가라는 손짓을 한다. 그녀는 전혀 이 어둠이 무섭지 않다는 듯이, 매일 자기보다 키가 훌쩍 커버린 고등학생이 된 손자에게 그렇게 등불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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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선상에 널브러진 그물을 부둣가로 끌어올리는 어부의 손길이 바쁘다. 검게 탄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이 그들의 고된 삶을 말해준다. 당신에게 뱃길을 내주는, 물고기를 담아 주는 바다에게 늘 감사하며 떠나지 못하는 어부의 일과의 한켠을 본다. 미디어의 공짜 홍보 덕택에 거만해진 생선구이 가게의 횡포, 혹은 부둣가 근처의 횟집 가게 주인들의 얄팍해진 인심을 제외하면 동명항의 관광은 아직 사람냄새와 어촌의 삶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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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6 01:39 2010/12/16 01:39

설악산 part 4 / 강원도

2010/12/03 12:53 Tags » , , , ,
설악산 part 4 :  Mt. Seorak 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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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다.
그곳에서 바라본 하늘은 팔을 뻗으면 닿을 듯 내려와 있다.
아니, 이미 하늘을 걸쳐 있는지도 모른다.
구름 안에서 하늘을 느끼는지도.
팔을 뻗어 손을 활짝 펴자, 손가락 사이사이로 구름이 지나간다.
마치 깍지를 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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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다.
저 높이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대들 머리꼭지가 보인다.
아니, 더 올라서야 모든 것을 보여줄지도 모른다.
영영 못 볼 수도.
또 오르고 오른다.
구름 위가 궁금해서 콩나무를 오르던 잭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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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바라보다.
저 멀리 시야가 뻗어 갈수록 산들은 희미해져 가고 끝내 숨어버린다.
그대의 얼굴도, 자주 하던 습관도, 말투도.
나의 흐릿한 추억처럼.
모든 것들은 서서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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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내려가다.
산을 마주하고 올라서 보지 못했던 산 밖의 모습들,
산을 등지고 내려가다 보니 그 광경이 말하는 이야기에 즐거워진다.

...
미친 듯이 오르기만하는 당신네 삶에서,
그대의 등 뒤에는 얼마나 재미있는 삶이 있는지 모를테지.
그러면서도, 그대들 발 밑에서 천천히 오르는 나를 안타깝게 생각할지도.

하지만, 전혀, 그런 오지랖은 사양하겠어.
난 그대의 냄새 나는 엉덩이를 보고 오르는 게 아니라,
나의 등 뒤의 아름다움을 즐기면서 오르는 거니깐.

내려올 때, 보면 되지 않느냐고?
그대가 추락하게 되면 어지간히 즐기면서 떨어지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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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3 12:53 2010/12/03 12:53

설악산 part 3 / 강원도

2010/12/02 13:11 Tags » , , , , ,
설악산 part 3 :  Mt. Seorak Ulsanbawi(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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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 바위에서 한 숨을 돌리고 나니 조금은 살 것만 같다. 중년의 불륜스러운 커플의 사진사가 되어 그들의 닭살스런 애정행각도 단 한 번의 구토도 없이 참아내기도 한다. 친구들이 올라갈 채비를 하고선 그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사실 꽤 십여분 동안 그들은 그렇게 나를 보고 있었다. 오랜만의 산행이라서 더 이상은 무리라는 생각에 그냥 여기서 그들을 기다리겠노라고 선언을 하기 전까지 말이다. 그들에겐 구차한 변명인게 분명하다. 그리고 맘대로 하라는 식의 반응까지 보인다.

'어, 한번은 꼬드겨 봐야 하는 거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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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래도 넷이서 한 여행인데 다 함께 올라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가방을 들쳐 멘다. 엄홍길 대장과 같이 든든하게 맨 앞서서 오르기 시작하는 박가 친구를 시작으로 이놈이 과연 허리가 아픈 녀석일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김가 친구, 아직 100kg에는 아주 미세하게 쪼끔 모자란 몸을 이끌고 오르는 송가 친구, 그리고 내가 젤 뒤에 붙어 따라 오른다.

이제껏 오른던 길과 차원이 다르다. 번번이 바위를 밟고 올라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저 멀리 보이는 붉은색 철계단은 마치 하늘을 올라가는 계단처럼 수직으로 뻗어 있다. 그리고 앞서 가던 친구들이 그 철계단 앞에 모여 있다. 박가 친구가 고소공포증 때문에 망설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하얗던 박가 친구의 얼굴이 더 새 하얗게 변해있다. 우리들의 걱정에 그는 흔들바위로 내려가서 기다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선다. 그것도 그럴만한 것이 이 철계단은 두 발로 걷는다기보다 양손과 양발로 고양이가 계단을 오르듯 엉금엉금 오르게 된다. 아찔한 공포심 때문에 숨을 더 거칠게 몰아 쉰다.

이런 내가 부담스러웠는지, 아니면 자주 멈춰 서는 앞사람들에게 내가 화를 낸다고 오해를 하셨는지, 두세 걸음 앞에서 서서 숨을 고르시던 아주머니가 동행분들한테 내 앞길을 열라고 소리치신다.  

"거기 뒤에 총각 올라오는 길 좀 터줘. 당신들 때문에 저 총각이 답답해하잖아."

안 그러셔도 되는데, 아주머니의 오지랖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아이고, 아주머니 저도 죽겠어요. 이 거친 숨소린 저 죽겠다는 소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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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덜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고자 잠시 바위틈에서 휴식을 취한다. 등을 돌려 앉자 저 멀리 산 꼭지들이 나와 같은 눈높이를 하고 있다. 산들은 푸른 하늘에 젖어 은은하게 농담되어간다.

아~~~, 하고 소리치면 나의 목소리도 점점 약해져서 사라질 것 같아. 확 뛰어들어, 저기로 빠져들어 가면 내 몸이 알알이 쪼개어져서 분산될 것만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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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고있는 가파른 철계단의 손잡이는 고드름처럼 차다. 장갑 하나 없이 미끄러운 운동화에 청바지 차림으로 이런 험한 산을 오르다니, 참 무모하기만 하다. 짧은 인생에서 참 많은 무모한 도전 중에 하나로 꼽혀질 이번 등산은 나에게 또 한 번의 가르침을 준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기보다는 움직여 보라고.

"한번 해봐, 겁내지 말고 해보란 말야. 우선, 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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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가까워지고 그 소리가 선명해 질수록 나의 발걸음도 바빠진다. 그리고 오르는 정상! 그곳에서 내려다본 산 아래에 어제 묵었던 리조트도 보인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저기서 여기를 보고 있었는데, 지금은 반대의 상황이라니 신기하기도 하고 뭔가 모르게 짜릿한 성취감도 느껴진다.

"오~ 정상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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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친구와 내가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밀려 올라오는 입구에 섰을 때 우리 모두 깜짝 놀랬다. 박가 친구가 하얀 얼굴을 들이밀면서 정상까지 올라 온 게 아닌가. 분명히 등을 돌리고 내려갔던 친구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다시 올라왔는지. 아무튼, 첫 산행길에 오른 남정네가 모두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물론 박가 친구도 함께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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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2 13:11 2010/12/02 13:11

설악산 part 2 / 강원도

2010/11/30 13:11 Tags » , , , , , ,
설악산 part 2 :  Mt. Seorak Heundeulbawi(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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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길을 따라 왼편엔 보기에도 차게 보이는 투명한 계곡물은 노란 낙엽을 실어 흐르고 있다. 추울까 봐서 단단히 챙겨 입은 외투를 하나씩 벗는 송가 친구는 그저께도 팔공산을 올랐다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늠름한 그의 양발에는 등산화가 신겨져 있고 그의 걸음에는 트래킹에 어울리는 활기가 느껴진다. 사진을 찍는다고 뒤처진 이유도 있겠지만, 성큼성큼 저 앞서 나가던 박가 친구와 김가 친구는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다. 그 사실을 발견한 송가 친구가 삐쭉 입을 내민 채 말한다.

"박가 놈, 맞춰 걷는다더니 사라지고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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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밑까지 숨이 차기 시작한다. 계단을 오르는 다리는 추를 달듯 무거워져만 간다. 무릎에 팔을 뻗어 기댄 채 허리를 숙여 거친 숨을 몰아쉰다. 하나둘씩 길 가장자리에 멈춰 선 나를 지나간다. 나의 인생도 이렇듯 산을 오르는 것 같아. 하루하루 살다가 더 나아갈 여력이 없이 좌절에 빠져 있을 때, 주변에 잘 나간다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질투심이 삐죽 튀어나올 때마다 숨곤 했었다. 지금 좁은 계단 길에 지쳐 허덕이는 나와 중첩된 삶이다. 피가 머리로 몰리기 시작한다. 가랑이 사이로 붉게 상기된 얼굴로 올라오는 송가 친구가 보인다. 내 엉덩이 뒤까지 오더니 숙인 나의 등에 올려진 가방을 들쳐 올리면 말한다.

"힘들면 내가 가방 멜게. 이리 줘."

참, 이래서 살맛나. 힘들 때 서로 위로가 되는 친구. 그의 말 한마디. 그리고 함께 옆에 서 있는 게.
스프링을 단 것처럼 허리를 쭉 펴고 다시 힘을 낸다.

"가자.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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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강력 접착제로 붙여 놓은 걸까. 바위 위에 자리 잡은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만약에 화학물질로 끈적거리는 접착제로 붙였다면 잎이 저렇게 생기 넘치지 못할 텐데. 뿌리는 바위 속으로 숨긴채 활짝 웃으면서 곧게 서 있다. 고된 삶을 이겨낸 나의 할머니의 미소처럼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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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여쯤 올라 왔을까. 천연의 거대한 바위 위에 또 하나의 바위가 김연아의 스케이팅 자세로 올라서 있다. '흔들바위'로 유명한 두 팔을 뻗어 밀면 흔들거리는 바위이다. 분명한 것은 아래 큰 바위와 붙어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무슨 이유로 덩치 큰 바위에 앉아 산 아래를 보면서 광합성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바위가 무엇인가 그리워서 잘 보이는 곳에 앉아 기다리는 것만 같아서 애틋하기만 하다.

'그대 무엇을 그렇게 기다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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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30 13:11 2010/11/30 13:11

설악산 part 1 / 강원도

2010/11/27 17:01 Tags » , , ,
설악산 part 1 :  Mt. Seorak pr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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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TV 소리에 눈이 떠졌다. 어제 했었던 아시안게임 중에 박태환이 금메달을 딴 장면을 몇 번이고 격양된 목소리와 함께 텔레비전 프레임 안에서 비추어지고 있다. 이불을 고쳐 덮자 발끝에서 매끈한 몽둥이와 같은 TV 리모콘이 느껴진다. 아마도 저 TV는 밤새 틀려 있었던 게 분명하다. 슬며시 발등으로 그 리모콘을 소파 밖으로 밀어낸다.

탁! 하는 날카로운 소리에 맞춰 거실에서 잠을 자던 박가 친구가 이불 밖으로 제 몸을 꺼낸다. 부쩍 부지런해진 박가 친구가 서두르자는 종용에 따라 다들 하나둘씩 거실로 모여들고 고된 여행의 다음날, 아침식사라는 기적적인 의식까지 치르게 된다.

가뿐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하루, 열린 거실 큰 창 사이로 새어들어 오는 햇살과 바람이 나를 간지럽히듯 스쳐 지나간다.

'자, 나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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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은 수학여행지로 유명한 산이기도 하거니와 봄의 진달래, 초여름의 신록, 가을의 단풍, 그리고 겨울의 설경으로 등산객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에게도 사랑받는 산이다. 일 년 가운데 다섯 달은 눈이 쌓여 있다 하여 설악(雪岳)이라 이름 붙여진 이 산 등산로 입구에 도착한다. 그 입구에서 반달곰이 반갑게 우리를 마중 나오고 아쉬워서 아직 지지 못한 붉은 단풍이 한껏 멋을 내고 있다. 많은 외국 관광객들의 발소리로 분주하고 허리춤에 걸머지고 내려 오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설악산의 초겨울은 초입부터 그 멋이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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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산이라는 뜻의 '악(岳)'이 들어간 산은 산행하기가 험난하기로 잘 알려져 있다. '죽기야 하겠어.'라는 무모한 말에 계획되어 산행을 할 코스는 3.8km의 울산바위코스이다. 설악산 국립공원 매표소에서 소공원으로 들어오면서 시작해서 신흥사를 지나고, 소나무, 참나무류, 당단풍나무 등 숲 속 길이 나온다. 그 숲 속으로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들어선다.

'후~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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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7 17:01 2010/11/27 17:01

구절리_아우라지 part 1; 정선 / 강원도

2010/11/23 11:24 Tags » , , , , , , ,
구절리_아우라지 / 레일 바이크 : Rail Bike 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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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강원도의 환상적인 엑티비티 중 하나인 레일바이크를 탄다. 뭐, 그렇다고 환상적일 거까지는 없지만 웬만해선 매진이 안 되는 경우가 없는 인기절정의 정선이 자랑하는 관광상품이란다. 물론, 이것 또한 박가 놈이 치밀하게 꾸며 놓은 여행코스이기도 하다. 레일바이크는 정선의 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7.2km를 시속 20Km의 속도로 철로 위를 달리는 철길 자전거 투어이다. 2인용과 4인용의 레일바이크를 선택해서 탑승할 수 있는데, 우리는 남정네 4명과 딱 맞는 4인용 레일바이크를 타기로 이미 서울에서 결정되어 있었다.

페달을 책임지기로 한 박가와 김가 친구가 뒷좌석에 앉고 송가 친구와 내가 앞에서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담당하기로 한다. 놀이공원에서 전해 내려오는 속설인 '놀이기구는 제일 처음 아니면 맨 끝이 제일 재미있다'는 말에 따라 우리는 길게 주차된 레일바이크 중에 제일 앞의 한 놈을 찜해 놓고 그 옆 승강장에 사채꾼처럼 떡 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출발하려면 30분이나 더 기다려야 한단다. 그래도 이 레일바이크 머리를 놓칠 순 없어서 산 그림자가 진 서늘하고 음습한 곳에서 기다린다.

'으... 으쓰으쓰한게 추운데. 달리면 더 춥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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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출발!

박가와 김가 친구가 힘차게 페달을 밟는가보다. 밀려나가는 출발 속도가 꽤 마음에 든다. 그리고 가까워지는 산기슭의 초록과 노란 물결이 넘실거린다. 맨 얼굴에 전해오는 시원한 바람 또한 꽤 상쾌하다.

'달려라.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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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에 아치 모양의 속이 새까만 굴이 보인다. 그 어둠의 굴은 블랙홀처럼 우리가 탄 레일바이크를 빨아당긴다. 긴 혀처럼 철길을 뻗어 우리를 끌어당기는 게 살짝 무섭기도 하다. 내 마음을 훔쳐 보았는지 뒤에 두 친구 녀석이 괴성을 지르며 속도를 더 내기 시작한다.

"우아아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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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 속으로 들어가자 어둑어둑한 어둠이 우리를 둘러 덮는다. 그 속에서도 울리는 공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저 멀리 앞에는 이미 출구의 굴 끝이 보이고 환하게 빛이 빛나고 있다. 탈옥수의 희망처럼 저 빛을 향해 다가갈수록 뭔가 새로운 게 나타날 것만 같은 기대로 녹슨 심장의 실린더가 숨 가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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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굴 끝으로 갈 수록 흐릿하지만 어떤 윤곽이 나타나고 눈 부신 빛이 안개처럼 펼쳐져 있다. 그 빛의 안개는 서서히 사라지고 금색의 옷을 예쁘게 차려입은 키 큰 나무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사실 크게 기대하지 않은 레일바이크였다. 나의 옹졸했던 기대는 팝콘이 터지듯 하나둘씩 터져나간다.

'야호! 이거 너무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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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3 11:24 2010/11/23 11:24

구절리_아우라지 part 2; 정선 / 강원도

2010/11/23 11:24 Tags » , , , , , , ,
구절리_아우라지 / 레일 바이크 : Railbike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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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의 프레임 밖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할 따름이다. 사실 '아름답다'보다 '환상적이다'가 훨씬 근접한 느낌을 담고 있을 것이다.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빛의 향연과 그 속에서 살고있는, 간간히 스쳐지나가는 시골의 정겨운 모습, 그리고 그 풍경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이 느낌은 컴퓨터 그래픽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환영과 같다. 유난히 밝은 한 낮의 철길 위에서 환상 속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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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한, 그저 그런 엑티비티로 생각하고 돌아갔더라면, 정말 대성통곡을 할 것이 분명하다. 위대한 자연이 만든 황홀한 풍경과 공기 알맹이마다 신선한 가을의 향기를 뭍혀 전해오는 이 느낌을 다른 누군가에 의해 전해들었다면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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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듯 지나가도 만나는 인연마다 반갑게 인사하는 당신처럼,
철길 위로 지나가는 여행자를 위해 정선의 고갯길 풍경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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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리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의 길은 송천의 물길을 따라가기도 하고, 드넓은 밭 사이를 달린다. 3개의 산을 통과하는 터널마다 그 색깔과 공기가 다르다. 이렇듯 이 철길은 정선의 산과 물의 진면목을 고스란히 훔쳐보는 멋진 여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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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photograph by ke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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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23 11:24 2010/11/23 11:24

구절리 part 2 ; 정선 / 강원도

2010/11/22 11:43 Tags » , , , , ,
구절리 part 2 : Kujul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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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가  릉시와 주시의 앞머리를 따서 불리는 이름이라는 걸 아는가. 강원도 고갯길을 오르고 내리다 보면 저 아래 까마득히 바다가 보인다는 사실을 아는가. 강원도는 제 이름처럼 자연의 경계, 사람의 경계를 잇는다. 한 고개 한 고개 넘다가 만나게 되는 모습과 풍경들은 강원도여행의 묘미이다.

강원도에선 급할 게 없다. 펼쳐진 절경은 그 자리에서 한참 동안 우리의 시선 안에 머물러 있고, 꼬불꼬불 시나브로 들어가는 고갯길에서도 삶의 향기를 전하는 매력으로 넘쳐난다.

조금만 느리게 여행하기.
그게 강원도의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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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need more information about 'Kujulri(九切里)', click below.
http://www.ariaritour.com/sub.asp?Mcode=10101


2010/11/22 11:43 2010/11/22 11:43